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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궁금증

[Unasked Things #20] 왜 지우개로 쓴 글씨는 완전히 안 지워질까?

지우개로 지운 글씨는
항상 조금 남는다.
지운 줄 알았는데,
어딘가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마치 말실수처럼,
기억에서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에게는 그대로 남아 있는 말처럼.

지우개는 정말 모든 걸 지울 수 있을까?



지우개는 연필심(흑연)을
문질러 종이 표면에서 제거하는 도구다.
흑연은 종이에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얹혀 있는’ 물질이라
마찰력으로 지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종이는 완전히 매끄럽지 않다.
미세한 섬유 사이사이에
흑연 가루가 살짝 스며들거나
눌려서 파인 자국을 남긴다.

그래서 겉으로는 지운 것처럼 보여도,
빛을 비추거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흔적’은 남는다.



심리학적으로도
이건 참 많은 것을 닮았다.

지운 기억,
지운 감정,
지운 줄 알았던 말 한마디.

지웠다고 믿지만
어딘가에 눌려 남아 있는 감정의 흔적은
종이 위의 연필 자국처럼
어느 날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지우개로 지운 자리에
다시 무언가를 쓰면
그 아래 있던 글씨가 떠오를까?

사람의 기억도 비슷하다.
덮어쓴 감정, 바꿔 쓴 기억 속에서
그 흔적은 때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어떤 말은
‘없던 일로 하자’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지우개에 너무 많은 역할을 맡긴다.
하지만 진짜 흔적을 지우는 일은
훨씬 더 섬세하고, 더디고, 깊은 일이다.

남은 자국까지 품어야
비로소 지운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